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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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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 Scene#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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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요즘 과학자들이 밤낮으로 관측 하며 주목하고 있는 별이 있다. 그야말로 전 세계의 과학자들이 서로 번갈아 가며 빈틈없이 이 별을 지켜 보고 있다. 많은 사람이 지구 여기저기에서 하나의 별을 지켜보고 있는 모습을 생각하면 어쩐지 마음이 몽글해진다. 그런데 왜 우주의 저 수많은 별 중 하필 이 별일까? 이 별의 이름은 바로 베텔게우스다. 천문학에 관심이 없다면 다소 생소할지도 모르는 ‘베텔게우스’를 많은 이가 지켜보고 있는 이유는, 바로 초신성 폭발 현상을 포착하기 위해서이다. 현재 베텔게우스는 명확한 붕괴 징후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가까운 시일 내 폭발할 것은 틀림없지만, 정확한 날짜와 시간을 예측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항시 관측하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모두가 밤하늘을 함께 바라보는 이 낭만적인 그림은 사실 베텔게우스의 죽음을 기다리는 일이다. 수명을 다 한 별이 핵융합반응을 멈추면서 중력에 의해 엄청난 폭발을 일으키는 현상을 초신성폭발이라고 한다. 상상을 초월하는 빛과 열이 뿜어져 나오기에 한동안은 낮에 마치 두 개의 태양이 떠있는 듯 보일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어두워져 결국 베텔게우스가 빛나던 자리에 우리가 볼 수 있는 건 어둠밖에 없게 될 것이다. More
베텔게우스의 서한 Scene#5
Teset
요즘 과학자들이 밤낮으로 관측 하며 주목하고 있는 별이 있다. 그야말로 전 세계의 과학자들이 서로 번갈아 가며 빈틈없이 이 별을 지켜 보고 있다. 많은 사람이 지구 여기저기에서 하나의 별을 지켜보고 있는 모습을 생각하면 어쩐지 마음이 몽글해진다. 그런데 왜 우주의 저 수많은 별 중 하필 이 별일까? 이 별의 이름은 바로 베텔게우스다. 천문학에 관심이 없다면 다소 생소할지도 모르는 ‘베텔게우스’를 많은 이가 지켜보고 있는 이유는, 바로 초신성 폭발 현상을 포착하기 위해서이다. 현재 베텔게우스는 명확한 붕괴 징후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가까운 시일 내 폭발할 것은 틀림없지만, 정확한 날짜와 시간을 예측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항시 관측하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모두가 밤하늘을 함께 바라보는 이 낭만적인 그림은 사실 베텔게우스의 죽음을 기다리는 일이다. 수명을 다 한 별이 핵융합반응을 멈추면서 중력에 의해 엄청난 폭발을 일으키는 현상을 초신성폭발이라고 한다. 상상을 초월하는 빛과 열이 뿜어져 나오기에 한동안은 낮에 마치 두 개의 태양이 떠있는 듯 보일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어두워져 결국 베텔게우스가 빛나던 자리에 우리가 볼 수 있는 건 어둠밖에 없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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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나는 여자 친구와 서른 동갑내기이고, 여자 친구는 일란성 쌍둥이의 언니다.(정말 똑같이 닮았다.) 우리 셋은 고등학교 동창이기도 하고, 지난 이십 대 내내 알고 지낸 덕에 지금은 친구 이상으로, 가족처럼 편하고 허물없는 사이가 되었다. 내 부족으로 우리 커플은 아직 결혼하지 못했지만, 여자 친구 쌍둥이 여동생(이하 D로 표시)은 이미 2015년에 결혼해서 슬하에 두 돌을 맞은 첫째 딸과 이제 겨우 생후 1개월이 다 되어가는 둘째 아들이 있다. 야무지고 똑 부러지던 D는 이제 우리 친구가 아닌 누군가의 아내, 며느리, 그리고 엄마로서의 삶을 꽤 능숙하게 해나가고 있다. 원래도 아기들을 보면 환장하는 나는, 이미 D네 아기들의 ‘조카 바보 예비 이모부’로 등극했다. 첫째 딸은 나를 보면 애칭인 ‘바트’라고 부른다. 아직 한 줌의 존재인 둘째 아들은 얼마 전 D의 친정이자 여자 친구의 본가인 김해에서 안아서 재우고, 젖병을 물리며 내 존재를 여실히 어필했다. 우리 셋은 사이가 돈독한 편이라 1, 2주에 한 번씩은 D네 집으로 가서 아기를 보고 수다를 떨곤 했는데, 벌써 아이 둘의 엄마가 된 D를 보면서 나는 ‘정말 육아란 보통 일이 아니구나.’하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More
test Scene#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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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그 사람은 합리적이라 했다. 그리고 착하다고 했다. 열정이 있으며 정직하다 했다. 날마다 새로운 생각을 하며 진정성을 추구한다 했다. 그러려니 했다. 누구나 그렇게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누구나 그것을 추구하고 자신을 포장하니까. 세상엔 자신을 스스로 깎아내리는 존재는 거의 없다. 더 내세우지 못해 안달하고, 더 높이지 못해 안절부절한다. 어찌되었건, 나는 그 사람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했다. 그 사람의 장점과 정신, 그리고 추구하는 바를 일목요연하게 말이다. 처음엔 쉬웠다. 그 사람이 말한 것을 그대로 읊으면 되었다. More
test Scene#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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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울음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고통스러워도 울고, 서럽고 슬퍼도 울며, 화나도 울고, 짜증나도 울고, 기뻐도 울며, 좋아도 울고, 감동적이어도 운다. 사람의 감정 표현 중에서 가장 극단적인 게 어찌 보면 이 울음일 것이다. 이 울음에 종류가 있다는 게 재밌지 않은가. 사람이 한가지 이유 때문에 울지 않는다는 건 모두가 다 알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건 따로 있다. 울음이 가져다주는 효과인데, 고대 그리스에서는 울음이 ‘감정의 정화’를 시킨다고 봤다. 울음이 감정의 쌓이고 막힌 것을 풀고 해소해주는 일종의 ‘감정적 배설’ 기능을 한다고도 봤는데 어쨋거나 이 ‘감정의 정화’를 일컬어서 ‘카타르시스’ 라고 했다. More
pretend to lickit Scene#5
그만 울자
울음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고통스러워도 울고, 서럽고 슬퍼도 울며, 화나도 울고, 짜증나도 울고, 기뻐도 울며, 좋아도 울고, 감동적이어도 운다. 사람의 감정 표현 중에서 가장 극단적인 게 어찌 보면 이 울음일 것이다. 이 울음에 종류가 있다는 게 재밌지 않은가. 사람이 한가지 이유 때문에 울지 않는다는 건 모두가 다 알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건 따로 있다. 울음이 가져다주는 효과인데, 고대 그리스에서는 울음이 ‘감정의 정화’를 시킨다고 봤다. 울음이 감정의 쌓이고 막힌 것을 풀고 해소해주는 일종의 ‘감정적 배설’ 기능을 한다고도 봤는데 어쨋거나 이 ‘감정의 정화’를 일컬어서 ‘카타르시스’ 라고 했다. 대학 시절에 독서 치료사 과정을 이수하는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말만 독서치료지 거의 심리 상담에 대한 수업이었다. 이 독서치료 수업에서도 역시 이 ‘카타르시스’를 아주 중요하게 여겼다. 정확히는 ‘카타르시스’ 보다는 ‘울음’에 더 중점을 두었다. 내담자와 책을 읽고, 책의 내용과 주인공에 공감하거나 이입하고, 혹은 거부하는 걸 듣고 관찰하고, 서로 신뢰를 쌓는 과정에서 내담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며 ‘울음’을 보인다면 이것은 좋은 징조라는 것이었다. 수업 자체도 상당히 겉핥기 식이었기 때문에 이 정도만 기억이 나지만 어쨌거나 ‘울면 장땡’ 이라는 식의 수업 내용이 상당히 거부감이 있었던 기억이 난다. 심지어는 수업 중간에 실습을 하며 한 학생에게 가족에 대한 사적이고 대답하기 싫어하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교수와 수업중이라는 분위기를 이용해서 계속 유도했고, 결국 그 학생이 울음을 터뜨리며 과거의 내밀한 이야기(나 같은 사람은 별로 그 수업에서 잠깐 보고 말 그 학생의 내밀한 과거 따위 알고 싶지 않았으나)를 털어놓게 했다. 학생이 울자 교수는 ‘울음은 독서 치료에서 중요한 요소이죠’ 라며 되도 않는 소리를 했던 기억이 난다. 사실 그 교수도 어처구니 없었지만 학생이 울자 여기저기서 안쓰러운 탄식에, ‘괜찮아 괜찮아’ 식의 갑작스런 감정적 응원, 절친의 따라 울기 같은 현상들이 벌어져 더 나를 불편하게 했다. 이 비슷한 종류의 분위기는 작년에 문화 예술 지도사 자격증을 따며 교육 연극 실습 수업에서 벌어졌는데, 다행히 이 수업에서는 ‘울음’ 보다는 ‘카타르시스’에 더 중점을 두었다. 가장 중요한 건 학생이 연극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자기가 직접 몸으로 표현하고 입으로 말을 하게 한다’는 과정이었다. 특히나 그 과정에 있어서 연극은 특화된 장르이기도 했기 때문에 이미 연극을 전공한데다, 직업이 연극이었던 수많은 학생들(나를 포함해)은 자신들이 배웠던 연극의 새로운 가능성과 기능을 발견하며 신기해하기도 했다.